“너는 먹는 것 하나 조절 못하니?”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은 언뜻 아무렇지 않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말들입니다.
“남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먹으면 되잖아. 그게 왜 어려워?”
“담배도 끊고 술도 끊는다. 그런데 먹는 것 하나 조절 못하니?”
“넌 회복하려는 의지가 있는 거니, 없는 거니?”
“너처럼 멀쩡하고 똑똑한 애가 왜 이러고 있니? 앞날이 얼마나 창창한데!”
“네가 자초한 일이잖아.”
“살 좀 찌면 어때? 통통한 게 보기 좋지.”
“섭식장애가 좀 나아졌나? 얼굴이 좋아졌네.”
이 말들은 대부분 걱정, 답답함, 격려의 마음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섭식장애에 대해 지극히 몰이해적인 이 말들은, 매 순간 고민하고 자책하며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당사자에게 수치심, 방어감, 분노를 키울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치료를 방해하고, 자칫 극단적인 자기혐오와 절망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섭식장애는 단순히 음식을 조절하지 못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의지, 태도, 성격의 문제로 몰아가면 당사자는 결국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누구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더 고립되고, 가까운 사람에게도 증상을 숨기거나 그 어떤 개입의 시도도 피하게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외모에 대한 평가는 조심해야 합니다. “보기 좋아졌다”는 말조차 당사자에게는 “살이 쪘다”, “몸이 평가받고 있다”, “살이 쪘으니 이제 아무도 내가 아프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평가하거나 성급히 추측하는 대신, 솔직한 걱정의 마음을 차분히 전하는 것입니다. 체중, 체형, 음식의 양, 다이어트, “좋은 음식/나쁜 음식”에 대한 말은 가능하면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대신 당사자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이 가장 두려운지, 어떤 도움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통념적인 조언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 조언으로 해결될 일이었다면 당사자가 그토록 고통을 겪지도 않았을 테지요. 성급한 조언보다 필요한 것은 먼저 듣는 일입니다. 가족과 주변 사람이 느끼기에는 이미 충분히 들은 것 같아도, 당사자에게는 아직 자신의 고통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너는 이래서 문제야”라고 말하기보다, “내가 보기에는 요즘 많이 힘들어 보여서 걱정돼”처럼 관찰한 사실과 염려를 나누는 편이 낫습니다. 혼자 해결하라고 밀어내기보다, 필요하다면 전문가를 함께 찾아보고 예약이나 방문에 동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식사하는 게 많이 힘들어 보여.”
“혼자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하는 것 같아서 걱정되고 안쓰러워.”
“혼내려는 게 아니라, 같이 방법을 찾고 싶을 뿐이야.”
“지금 당장 다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네 몸이 위험해지는 건 그냥 두고 있을 수 없어.”
“도움 받을 곳을 같이 찾아볼까? 원하면 내가 같이 가줄게.”